전문의에서 변호사로 삶의 진로 바꿔 [박성...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취득 구독 10만명이상 ‘실버버튼’ 유튜브 활동 예과 2년 스키사고, 변호사로 진로 바꿔 북극성처럼 기준이 되는 사람 되고 싶다 박성민(의학03) 동문은 LF로펌 대표변호사 겸 전문의다. 2003년 인하대 의대 입학 2010년 졸업, 2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취득
구독 10만명이상 ‘실버버튼’ 유튜브 활동
예과 2년 스키사고, 변호사로 진로 바꿔
북극성처럼 기준이 되는 사람 되고 싶다
박성민(의학03) 동문은 LF로펌 대표변호사 겸 전문의다. 2003년 인하대 의대 입학 2010년 졸업, 2010년 서울대 로스쿨 입학 후 2013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2015년 인하대병원 인턴을 거쳐 2018년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갖췄다. 그는 현재 구독자 10만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 운영자에게 주어지는 ‘실버버튼’의 주인이다. 박 동문을 7월 28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공대 진학을 꿈꾸었다고 한다. “카이스트에 합격하고 입학 전 꽃동네 의무봉사 활동에 나서게 됐다. 장기간 누워계신 할머니의 손발을 물수건으로 닦아드리는 봉사활동을 하고, 어느 날 병실을 나설 때 운명하시고 말았다. 허공을 향한 그 할머니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았고, 인하대 의대 진학의 계기가 됐다.”
대학생활 중 커다란 시련이 닥쳤다. 예과 2학년 때 전국 대학 스키 동아리 행사에 참가하던 중 스키장 낙상사고로 하반신 장애를 갖게 됐다. 1년간의 병원 생활 뒤 복학을 했다. 그는 “당장의 학업을 이어가는 것도 고민이었지만 졸업 후 진로에 대해서도 많은 걱정을 했다”고 회상했다.
의사는 신체를 많이 써야 하지만 변호사는 앉아서도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 본과 4학년 의사 국시와 함께 로스쿨 입학시험을 준비했다고 한다. 졸업과 동시에 로스쿨로 진학해 이제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다. 초인적인 노력이 수반됐다.
그는 “기본적으로 의대와 로스쿨은 상당한 양의 암기를 요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앉아서 공부를 해야 하는 시간이 많았다. 장애인에게 학점 가산점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학습 역량이 뛰어난 동기들과 경쟁하는 것이 쉽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장애에 따른 남보다 긴 시간 사용을 극복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면서 “다른 여가 시간을 줄였고, 혼자 할 수 없는 일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주변 좋은 분들의 도움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KBS 아침마당’, ‘무엇이든 물어보살’ 등에 출연했다. 유튜브 활동 등을 통해 전문의 출신 변호사로 알려졌다. 그래서 의료관련으로 찾아오는 의뢰인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는 2018년 로펌을 설립했다. 소속 변호사는 8명이다. 2019년 수원지방법원의 이전과 수원고등법원의 신설로 수원 광교에도 사무실을 마련했다. 의료관련 소송만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일반적인 영역에 추가해 의료 관련 이슈들을 다룰 수 있는 장점을 지닌 것이다.
의사 출신 변호사로서 주로 의료 관련 사건이나 산업재해, 인체와 관련된 손해배상 사건을 많이 맡게 된다. 그는 “상해나 성범죄 사건에서 관련자 진술에 관한 의학적인 반박이나, 감정 결과에 대한 의학적 이의 제기 등 인체, 혹은 의학적인 이슈가 관련되면 다른 변호사들보다는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의대 친구들의 권유로 시작한 ‘박성민변호사’ 유튜브의 구독자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특화된 주제를 발굴할 계획도 세웠다. 그는 “의대 졸업 동기 중에 ‘닥터프렌즈’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친구들이 있다. 나에게 법률 이야기를 하는 로이어프렌즈 채널을 제안했다. 현재는 구독자가 14만 5000명 가량으로 상당히 성장했다”고 밝혔다.
그는 변호사로서 기억에 남는 일로 의료사고 장애학생에 대한 소송을 꼽았다. 성형수술을 받던 고교생이 뇌졸중에 빠진 사건이었다. 그는 “내 경험이 있어 그 여학생이 앞으로 겪을 어려움이 예상돼 가슴이 많이 아팠다”면서 “법적으로 충분한 배상을 받기는 했지만 남은 생을 장애를 갖고 살아가야 할 어린 학생이 힘들어 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그에게 장애는 현재 의학으로는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숙명이 됐다. “‘장애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장애를 갖기 전과 후에 전혀 변한 것 없이 똑같다’와 같이 멋진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솔직히 장애는 상당히 불편한 요소다. 하지만 인생에서 떼어낼 수 없는 동반자가 됐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장애 이상으로 삶을 내려놓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장애로 할 수 없게 된 부분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부분에 더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좋을 듯싶다. 장애를 갖고 있지 않은 일반인들이 나보다 더 수월하게 결과를 내는 것이 누군가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삶에 가까이 가고 싶다.”
그는 “훌륭한 역할을 하는 인하대 선배들을 존경한다”며 후배들에게 “인생은 최적의 효율을 내야하는 업무가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는데 너무 팍팍하게 살아온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지나고 보면 다 의미 있는 시간들이니 너무 인생을 조급하고 쫓기듯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충고였다.
그는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별로 기억 되고 싶냐”는 질문에 “북극성처럼 되고 싶다”고 밝혔다. “북극성처럼 하나의 기준점이 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오피니언 리더는 있기 마련이다. 앞으로 거창한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회에 이슈가 생겼을 때 현재 하고 있는 직업과 유튜브 활동 등 사회적인 활동을 통해서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박성민이라는 사람의 의견을 궁금해 하고, 들어보는 그런 시간을 만들어 보겠다.”
인터뷰=신경식(행정78) 편집위원
